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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풍부한향기 맹인

작성자
김도완
작성일
2012.07.01
첨부파일0
추천수
0
조회수
1242
내용
소년이 나무를 더듬으며 껍질을 뜯어낸다
저녁해가 하늘을 밀어올리며 마을 밖으로 사라질 때,
소년의 닫힌 눈 속에 감추어진 세계가 열리고 있다
등에 솟아오른 종기처럼 몸을 둥글게 말고 있는 새,
구부러진 가지에 앉아 탈색된 나뭇잎을 쫀다
차가운 이슬이 소년의 이마를 두드리고 지나간다
은밀하고 두려운 축제 속에서 소년이 눈을 뜬다
나무의 뿌리를 휘감고 수천 년을 사는 뱀이
붉은 혀를 풀어 서서히 나무의 혼을 핥는다
더이상 잎을 틔워내지 못하고 말라가는 내부
나무를 떠메고 가고 싶은 새의 열망이
어두운 하늘의 흔적처럼 남은 벗겨진 나무의 속살
긴 척추를 뒤틀며 낼름, 하늘을 훔치는
뱀의 몸통이 점점 부풀어오른다
나이테로 스며드는 비단무늬
끈적이는 혓바닥 속에 맺히는 붉은 열매
소년이 상한 새를 끌어안고 천천히
썩어가는 나무 속으로 들어간다
가지에 엉겨붙은 비단비늘이 아픈 새의 날갯질에 떠밀려간다
텅 빈 내부에 쪼그리고 앉아 입김을 내뿜는 소년,
그 눈 속에 선연히 떠오르는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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